2016년 5월 22일 일요일

파파향기, 술향기 [김주앙]~

파파향기, 술향기 [김주앙]생의 마지막 순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기다렸던 사람은… 딸인 내가 아니었다. 또 다른 나, 같지만 다른 딸이었다 이 책은 딸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아버지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제2회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2010)을 수상한 소설가 김주앙의 장편소설 [파파 향기, 술 향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문학출판사 ‘세계사’에서 독립 출판브랜드로 새로 출범한 ‘작가세계사’(계간문예지 [작가세계] 발행)에서 펴내는 첫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우리 근세 역사의 거대서사와 개인사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분신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8.15해방을 맞는 순간, 이산가족이 돼버리는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본에 두고 온 일본인 아내와 아들딸과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되는 현실을 맞는다. 그로써 일평생을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선에 갇혀버린 ‘경계인’이자,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의 삶에도 자신을 투영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처지의 ‘대기자’로서 생을 마감한다. 오사카에 남겨진 일본인 아내 레이코, 아들 스스무와 딸 나오미, 밀양에서 재혼하여 맞은 아내와 두 아들 형민과 형석, 딸 상미(나오미의 한국식 이름). 이 아버지에 지워진 유산.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망가져 버린 한 남자의 애절한 순애보이자 이산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두 가족 안과 밖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중첩돼 있는 가족드라마이자 시대극이며 나오미와 상미라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창조해 놓은 일종의 도플갱어의 성장사를 엿볼 수 있는 성장소설로도 읽힐 수 있겠다. 아버지는 서로 다른 객체이나 자신에게는 같은 이 두 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역사와 정치권력이 추동하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과 괴리를 절감하며 한편 그로써 초라해져 버린 절대약자인 소시민으로서 자기위안거리로 삼는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아왔던 통속한 얘깃거리의 단초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익숙한 스토리텔링의 약점을 극복하고 긴장감을 이어주는 플롯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심사평’에서 보듯 작가가 정서적 기복이나 감상적 매몰 없이 심미적 안정감으로 시종일관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평생 자아를 찾아서 오사카와 밀양과 부산 거리를, 일본인 아내와 한국인 아내 사이를 헤맨 아버지와도 같이, 같지만 서로 다른 딸들인 나오미와 상미도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각기 일생을 남양군도로 페루의 리마로 전라도 광주로 서울로 밀양으로 오가며, 그리고 닥터 미겔과 노동운동가 기영과 불륜의 애인 관계인 국영기업체 사장 사이를 떠돈다. 이러한 일종의 자아 찾기,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부재한 아비 찾기를 통해 겪는 몇 가지 절절한 스토리들이 액자처럼 소설 속에 놓여 있다. 소설 작품에도 시대상이 반영돼 있듯이 대중과 밀접한 우리 가요의 노랫말에도 당대, 혹은 우리 시대의 정서가 녹아 있다. 오래전 애창되었던 가수 남진의 라는 가요의 노랫말이 이처럼 절실히 와 닿는 소설도 드물겠다. 흘러간 가요가 되풀이 불리며 우리 정서를 위무해 주듯이 이러한 스토리도 되짚어 읽히며 심금을 건드리고 역사의 현실은 되풀이된다는 문득 잊고 사는 경각심을 서늘히 불러오는 게 아닌가 추정해 본다. 작가가 언급한 마지막 말은 그래서 진정성으로 마음을 움킨다.나의 탄생과 ‘나’라는 존재는 일본에 있는 한 가정의 희생 위에 서 있다. 레이코, 스스무, 나오미라는 세 사람의 행복을 희생시키고 내가 있다. 그들 가정의 비극적인 생이별로 해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고 내 앞에 생이라는 선물이 던져졌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볼 수 없었던 생명이었다.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고 기다렸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오미였다. 내가 나오미가 아니었던 그 순간 내 존재의 미안함에 나는 아버지의 딸인 나오미가 아버지를 찾아오는 데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 자기 딸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아버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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